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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대도시의 사랑법" 리뷰(청춘, 퀴어, 서울)

by bongba 2025. 3. 31.

넷플릭스 영화"대도시의 사랑법" 관련 사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2024)’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퀴어 감성 영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지 LGBTQ+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 청춘들의 감정, 연결, 상실, 그리고 자기 존재의 서사를 극도로 섬세한 연출과 절제된 연기로 풀어낸다. ‘사랑한다는 말이 왜 이리 어려울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겪는 감정의 거리감, 자기 회피, 감정 전달의 실패를 날카롭게 건드린다. 퀴어라는 정체성 안에 담긴 보편적인 외로움, 대도시의 풍경 안에 스며 있는 침묵의 감정들. 모든 장면이 조용하지만 진하게 마음을 흔드는 영화다.

청춘

‘대도시의 사랑법’은 시작부터 서울이라는 도시를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그 서울은 우리가 흔히 보는 관광지 서울이 아니다. 익숙하지만 낯선 골목, 사람들 틈에 섞인 혼자만의 고요, 이 도시가 주는 ‘관계의 온도차’가 이 영화의 정서를 지배한다. 주인공 장우(변요한)는 우리가 잘 아는 서울의 청년이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고, 연애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관계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일상이 무기력하다. 그는 사랑을 꿈꾸면서도, 진짜 사랑은 믿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반복된 ‘거절당함’의 경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불안, 그리고 본인조차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감정이 끊임없이 자기 의심과 감정의 회피로 이어진다. 장우가 만나는 상대 재현(김우석)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그는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지 않고, 언제나 한 발짝 물러서 있다. 마치 상대가 떠나도 괜찮다는 듯, 사랑을 해도 애써 감정을 절제하려 한다.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의 감정은 자주 어긋난다. 만남은 반복되지만, 대화는 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함께 있다는 느낌이 없는 관계.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관계의 쓸쓸함을 도시의 질감과 함께 그려낸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공간의 활용이다. 좁은 원룸, 텅 빈 지하철, 새벽녘의 혼자 걷는 거리, 이 모든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감정의 확장판으로 작동한다. 서울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그저 그 자리에 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흘러간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감정은 서로 닿지 않는다. 카페, 지하철, 모텔, 원룸… 공간은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며 도시가 주는 고립과 거리감을 강조한다. 서울이라는 배경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관계의 질감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다.

퀴어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영화이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그 감정의 ‘보편성’이다. 장우의 성적 지향이 영화의 중심이긴 하지만, 관객이 느끼는 정서는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혼란스러운 사랑의 국면’이다. 장우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진짜 마음을 주는 것도 두렵다. 그는 스스로를 쉽게 노출하고, 또 쉽게 숨긴다. 진심은 있지만, 표현은 어긋난다. 그의 말투, 시선, 움직임 하나하나가 ‘내가 이 사랑을 해도 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가득하다. 반면 재현은 감정적으로 단단한 듯 보인다. 그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기보다, 사랑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그래서 장우는 더 불안해지고, 두 사람의 거리감은 점점 벌어진다. 이 거리감은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두려움, 상처, 불신의 총합이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장우가 혼자 울며 말하는 장면이다. “나는 왜 이렇게 미안한 사랑만 하게 되는 걸까. ”이 대사는 퀴어뿐 아니라, 모든 ‘눈치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통곡이다. 감독 이옥섭은 이 모든 감정을 과장 없이, 절제된 톤으로 그려낸다. 큰 음악도, 드라마틱한 장치도 없다. 대신 느린 호흡, 정지된 시선,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공기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의 경험으로 완성되는 감정 영화다.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는 작품이 된다. “나는 왜 이렇게 미안한 사랑만 하게 되는 걸까.”라는 장우의 대사는 그 자체로 현대인의 고백이다. 감독은 이를 감정적으로 몰아가지 않고, 절제된 호흡과 침묵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관객의 경험으로 완성되는 감정 영화다.

서울

‘대도시의 사랑법’이 특별한 건 사랑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사랑이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오해가 많고,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조용히 속삭인다. 장우는 마지막까지 완전한 사랑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더는 무너지지 않는다. 관계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완성되지 않은 사랑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메시지다. 모든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도, 그 시간이 헛된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다. 마지막 장면, 장우가 서울의 어두운 거리에서 혼자 걷는 그 순간. 그 장면은 슬프지도, 희망차지도 않다. 그저 담담하다. 그리고 그 담담함이 오히려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단순히 퀴어 장르로 한정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랑이 서툰 사람들, 자기 감정에 혼란스러운 사람들, ‘우린 지금 뭐야?’라는 질문을 수없이 해봤던 이들을 위한 연서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무심함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고, 또 얼마나 간절히 바라보는지를 정제된 미장센과 서사로 풀어낸 이 작품은 우리 시대 가장 진솔한 감정의 기록이다. 사랑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이름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애씀의 과정을 아름답고 조용하게 꺼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