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The Electric State, 2024)’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인공지능과 인간, 감정과 기술 사이의 간극을 다룬 감성 SF 어드벤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루소 형제가 메가폰을 잡았으며, 밀리 바비 브라운과 크리스 프랫이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폐허가 된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녀와 로봇의 여정을 통해, 인간성과 상실, 성장의 의미를 묻는다. 폭발적인 액션보다 마음을 두드리는 감정선과 비주얼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AI 시대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SF
영화의 주인공은 부모를 잃고 오빠마저 사라진 소녀 '미셸'(밀리 바비 브라운). 그녀는 정체불명의 로봇 '스킵'과 함께 미국 서부의 황폐한 도로를 따라 오빠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로드무비 형식의 진행은 단순한 목적지 도달이 아니라, 여정 속에서 감정적 성장과 진실에 다가가는 내면의 탐색을 중심으로 한다.
흥미로운 점은 로봇 ‘스킵’이 단지 기계적 조력자가 아니라, 미셸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스킵은 대사를 많이 하지 않지만, 몸짓과 눈빛(또는 기계식 표정 연출)을 통해 정서적 교류를 시도한다. 이러한 소통은 오히려 말보다 강력하며, 영화는 로봇과 인간 사이의 신뢰와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시적으로 보여준다.
미셸은 점차 스킵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두려움과 마주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이 여정은 단순히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상실에서 회복으로,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하는 감정적 통로다.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로봇과의 유대가 인간성을 되찾게 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감성
‘일렉트릭 스테이트’의 세계관은 스웨덴 아티스트 ‘사이먼 스탈렌하그’의 그래픽 노블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그만큼 영화의 비주얼은 매우 독창적이고 예술적이다. 낡은 송전탑, 부서진 드론, 버려진 광고판, 거대한 메카닉 잔해들이 가득한 황량한 풍경은 한때 번성했던 문명의 몰락을 상징한다.
감독은 이 배경을 단지 SF적 설정으로 소비하지 않고, 캐릭터의 감정 상태와 맞물리도록 연출한다. 예를 들어, 미셸이 외로움을 느낄 때 카메라는 황량한 풍경을 넓게 잡고, 스킵과의 감정 교류가 이뤄질 땐 따뜻한 색감이 삽입된다. 색감, 촬영 기법, 소품의 배치 등 모든 비주얼 요소가 감정을 시각화하는 데 사용된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디지털 유령’이다. 영화 속 세계는 한때 AI 전쟁으로 인해 붕괴된 상태며, 그 유산으로 남은 기술과 인공지능의 흔적이 배경에 남아있다. 버려진 통신망, 혼자 떠도는 드론, 작동하지 않는 로봇들이 화면 곳곳에 등장하며, 기술이 남긴 잔재이자 인간성의 파괴된 흔적으로 기능한다.
이런 시각적 언어는 ‘기계적 폐허’를 넘어서, 정서적 폐허를 표현한다. SF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반에는 몽환적이면서도 쓸쓸한 감성이 짙게 깔려 있다. 이는 관객이 단지 이야기만이 아닌, 감정의 분위기까지 함께 경험하도록 만드는 주요 장치다.
로봇동행
‘일렉트릭 스테이트’의 가장 깊은 울림은 단지 로봇과 인간의 동행이 아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상실에 대한 자각과 성장의 순간들이다. 미셸은 로봇 스킵과의 여정을 통해 점차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진실과 마주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그녀가 겪는 갈등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상실된 가족, 그리고 감정의 무게이다.
영화는 인공지능의 윤리나 기술적 한계보다는, 그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고, 무엇을 빼앗았는가에 집중한다. 이는 단순히 SF 장르를 넘어서, 인간 드라마로 확장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AI와 인간의 경계, 진짜 ‘가족’의 의미,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로봇에게도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극중 인물만이 아닌 관객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결국 이 영화는 묻는다. “기억은 사라져도 감정은 남는가?” “사랑은 존재가 아닌, 관계에서 피어나는가?”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화려한 SF 액션보다는 감성적 울림과 철학적 질문이 더 강하게 남는 작품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배경 속에서 로봇과 소녀의 여정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상실과 성장의 은유로 다가온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에서 오히려 더욱 소중해지는 ‘감정’과 ‘연결’의 가치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단순한 SF 영화 그 이상, 인간을 위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