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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전,란" 리뷰(인간의 본성, 신뢰, 한국형 스릴러)

by bongba 2025. 3. 28.

넷플릭스 영화"전,란" 관련 사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영화 ‘전,란(2024)’은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현대 한국 사회를 압축한 아파트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갑작스러운 고립과 단절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신뢰 붕괴, 생존 본능, 그리고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섬세하게 드러낸 심리 스릴러다. 생존을 위한 갈등이 아니라, 생존 중 생겨나는 의심과 배신, 그리고 공동체의 해체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관객에게 극도의 몰입감과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 리뷰에서는 영화 속 생존 심리의 디테일, 공동체 속 신뢰의 붕괴 구조, 그리고 한국형 스릴러로서의 영화적 완성도를 중심으로 분석해본다.

인간의 본성

‘전,란’은 도심 한복판의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한다. 외부와 단절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고립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단순한 ‘재난 발생’이 아니라, 재난이 만들어낸 심리적 파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갑작스러운 정전, 통신 두절, 외부 구조 불가 상황은 캐릭터들의 심리적 긴장을 극대화시키며, 영화는 이 고조되는 불안 속에서 ‘본성’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초기에는 서로 돕던 주민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물, 음식, 안전을 둘러싼 갈등 속에 점점 날이 선다. 대피소를 두고 벌어지는 이견, 누가 물을 더 가졌는지를 따지는 눈빛, 누군가를 의심하는 수군거림… 이 영화는 그런 사소한 불편함이 어떻게 폭력의 정당화로 이어지는지를 리얼하게 묘사한다. 특히 갈등의 중심에 선 한 인물이 “우리는 우리끼리 지켜야 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생존이라는 이름 아래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란’은 이러한 과정을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닌, 사회적 축소판으로 제시한다.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며, 이웃은 협력자가 아니라 경쟁자가 된다. 무너지는 건 건물이 아니라 신뢰라는 메시지가 관통한다.

신뢰

이 영화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점은, 신뢰의 붕괴가 공포를 만든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처음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대처하려 한다. 그러나 누군가 규칙을 어기고, 불확실한 정보가 떠돌며, ‘누가 우리를 배신했는가’에 대한 의심이 싹트자 분위기는 급변한다.

‘전,란’은 이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악 구도를 배제하고, 모든 인물을 회색지대로 그린다. 누가 옳고 누가 나쁜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정당한 분노조차 오해로 이어지며 누군가는 집단의 표적이 된다. 한 인물은 “난 단지 내가 살고 싶었을 뿐인데 왜 내가 괴물이 된 거죠?”라고 외친다. 이 대사는 영화의 핵심 주제이자, 관객 스스로의 윤리적 딜레마를 유발하는 강렬한 메시지다.

영화는 SNS나 뉴스, 정부의 개입 없이 오롯이 인간 대 인간의 충돌에 집중한다. 그리고 결국, 공포의 가장 큰 원인은 정보 부족이 아니라 신뢰 부족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단순한 생존 스릴러를 넘어, ‘전,란’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 즉 심리전과 불신의 확산을 조명한다.

한국형 스릴러

‘전,란’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재난 영화와는 다르다. 화려한 CG나 거대한 재해가 중심이 아닌, 사람과 공간, 그리고 그 안의 감정이 서사를 이끈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한국형 스릴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감독은 불필요한 설명 없이, 긴장감 있는 연출과 타이트한 편집을 통해 압축적인 몰입감을 만든다.

대사보다 인물들의 눈빛, 주방 한 구석에 숨겨진 생수 한 병, 잠긴 문 하나가 긴장감을 더하며, 관객은 마치 그 아파트 안에 갇힌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주연 배우는 절제된 감정 연기 속에서도 흔들리는 눈빛과 말투로 불안과 분노를 교차시킨다. 조연들 역시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어 더욱 몰입을 높인다.

무엇보다 ‘전,란’은 장르적 쾌감과 동시에,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안전한 사회, 믿을 수 있는 이웃, 신뢰 가능한 정보. 이 모든 것이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전,란’은 스릴 넘치는 생존극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은유다. 영화는 묻는다. “정말 재난은 외부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안에서 시작된 것인가?” 인간의 본성, 집단 심리, 신뢰와 배신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한 편의 스릴러를 넘어 우리 현실을 날카롭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결심을 내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