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실감 넘치는 영웅의 등장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 형사는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완벽한 주인공"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는 거칠고 말투도 투박하며, 때로는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서도철이야말로 관객이 진짜 현실 속에서 만나고 싶은 경찰, 나를 대신해 소리쳐줄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초반부는 경쾌하고 유쾌하다. 차량 밀수범을 추격하며 보여주는 그의 활약은 능청스러움과 날카로움이 공존하며 캐릭터의 매력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청년 노동자의 의문사 사건을 접하면서 시작된다. 이 사건을 쫓던 서도철은 점차 한국 사회의 깊은 구조적 문제와 마주하게 되고, 상대가 평범한 범죄자가 아닌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손에 쥔 재벌 3세 조태오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법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경찰조차 손을 대기 어려운 존재로 군림한다. 그런 상대와 맞서는 서도철의 선택은 단순한 정의 구현을 넘어, 부패한 권력과의 싸움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관객의 마음을 대리해준다. 우리가 분노해도 행동할 수 없었던 상황들 속에서, 서도철은 대신 뛰고, 소리치고, 부딪힌다. 현실 속 경찰이 아니더라도, 영화 속 이 캐릭터를 통해서라도 정의가 존재한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그를 응원하고, 그가 고난에 빠질 때 같이 긴장하며, 마지막엔 그의 승리에 함께 안도하게 된다.
2. 현실적 악역
'베테랑'의 조태오는 단순한 영화 속 악당이 아니다. 그는 우리 주변 뉴스에서 봤던, 이름은 다르지만 매우 유사한 존재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아인은 이 역할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풀어낸다. 조태오는 단순히 나쁜 짓을 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이 나쁘다고 느끼지도 못하는 존재다. 그는 모든 것이 당연한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한다. 자신의 부를 방패 삼아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감정 하나 없이 타인을 괴롭힌다.
유아인의 연기는 그 심리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언뜻 무심한 표정이지만, 그 안엔 냉소와 오만이 가득하다. 특히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대할 때의 태도는 관객에게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단순히 '미워하고 끝나는 캐릭터'가 아닌, '이런 인간이 정말 있구나' 싶게 만드는 현실감은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조태오는 극 중에서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경제적 권력과 언론, 법조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설정은 허구 같으면서도 실제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반영한 듯하다. 영화가 그의 존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한 인물의 악행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병폐이기도 하다. 조태오를 통해 관객은 '이 세상은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다.
3. 류승완 감독
'베테랑'은 단순히 범인을 쫓고 처단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감독 류승완은 사회 풍자와 장르적 재미를 균형감 있게 조화시키는 데 능한 연출자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액션, 유머, 감동, 메시지를 적절히 배치하며, 관객이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초반에는 웃음과 유쾌함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중반부터는 사회 문제를 중심에 놓으며 긴장감을 높인다. 이 자연스러운 전환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가 연출한 액션 장면들은 대부분 리얼함을 바탕으로 한다.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통쾌하고 시원하다. 이는 영화의 톤을 무너지지 않게 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다. 액션이 극을 주도하기보다는 서사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특히 마지막 도철과 조태오의 물리적 충돌 장면은 단순한 주먹다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정의가 이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는 왜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도 읽힌다.
또한 류승완 감독은 영화 속 배경 설정에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경찰 내부의 위계, 언론의 태도, 기업 내부의 권력 구도 등 현실을 반영한 장면들이 적절히 삽입되며,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닌, 사회 구조에 대한 은유로 작동한다. 덕분에 관객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단지 ‘재미있었다’는 감상에 머물지 않고, 뭔가를 곱씹게 된다.
4. 명장면
'베테랑'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인 동시에, 수많은 유행어와 밈을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너~무 하잖아~"라는 서도철의 명대사다. 이 대사는 관객의 분노와 통쾌함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며, 지금도 온라인에서는 댓글이나 밈으로 회자된다. 그 외에도 "돈 있으면 다 돼?" 같은 대사는 사회 풍자적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감정을 대변한다.
이러한 대사와 장면은 단순히 각본의 재미 때문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와 연출의 힘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서도철이 조태오를 쫓는 장면, 그를 향해 멱살을 잡고 분노를 터뜨리는 순간들은 단순히 ‘액션’이 아닌 감정의 절정이다. 이 영화가 남긴 유산은 단지 박스오피스 수치가 아니라, 그 시대 관객들이 느꼈던 ‘공감’이라는 감정이다.
또한 사회적 불평등, 부조리, 재벌의 권력 남용 등은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다. ‘베테랑’이 오래 지나도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그것이 그저 2015년의 영화가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현실 반영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결국, 유쾌하게 분노하고 통쾌하게 맞서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작품으로 남는다.